[책 리뷰] 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 시작하며
제가 참여하고 있는 독서모임 그룹챗에 어떤 분이 최근에 한 링크를 올려주셨는데요. 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 을 원작으로 한 연극이 10월에 공연을 앞둔다는 소식이었어요. 코로나 19이후로는 극을 잘 찾아보지 않았는데, 초연때보다 더 완성도를 높여서 돌아왔다고 하니 기대가 되더라고요.
서울시극단 ’일의 기쁨과 슬픔’ 10월 재연…“정원조, 김유진, 박동욱, 윤덕원 등 출연” - 서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직장인들의 리얼한 이야기를 담은 연극 ‘일의 기쁨과 슬픔’이 오는 10월 공연을 앞두고 캐스팅을 공개했다. 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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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은 2018년 창작과 비평에서 신인소설상을 받은 작품을 표제작으로 두고 있는데요. 정확히는 2018~2019년도의 단편들을 모아 낸 책입니다. 예전에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위에 언급한 독서모임에서 동 작가가 비트코인을 소재로 쓴 『달까지 가자』 를 읽는 중에 갑자기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함께 읽었는데, 이 기사를 보니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근래에 iOS 개발 공부를 집중하고 있기도 하고 작년에 휴학을 하면서 스타트업 회사들과 일을 하다보니 처음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르게 느껴지는 공감이 있더라고요. 읽으면서 떠오르는 심상이나 혹은 주요 키워드에 대해 가볍게 정리해보았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재밌게 읽어주세요!
참, 그리고 '일의 기쁨과 슬픔'은 알랭 드 보통의 동명의 에세이에서 착안한 제목입니다. 집요한 관찰력과 다소 건조한 시선과 문체에 에세이인데도 몇 장 읽지 못했는데요. 조만간 다시 한 번 도전해봐야겠습니다.
일의 기쁨과 슬픔
사랑, 불안, 여행, 건축, 종교 등 현대인과 관련된 다양한 개념들에 대해 자신만의 논의를 펼치고 있는 알랭 드 보통. 글을 쓰는 일을 직업으로 하고 있는 저자가 다양한 일의 현장을 찾아나서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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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첩장
저도 최근에 청첩장을 몇 장 받았는데요. 청첩장을 받으며 기대하는 것은 다들 비슷한 것 같아요. 건네주는 사람이 보내오는 정성이 어느 정도인지, 이 사람이 추후 내 결혼식에 올 수 있을 것인지, 축의금은 얼마나 내야 하는지, 나름은 치열하게 고민하고 식장으로 가게 됩니다. 이 사람과 내가 얼마나 네트워크가 겹치는 지도 중요한 지표입니다.
그래서 『잘 살겠습니다』의 '나'는 그 때문에 '빛나'의 연락이 반갑지가 않았습니다. 그는 3년간 연락이 없었고, 청첩장을 받았는데도 오거나 축의금을 전달하지 않았고, 이후에 그의 청첩장을 건네주었으니까요.
이렇게 불편한 청첩장 경제학 얘기 너머에는 열심히 취업준비를 하고 노력했음에도, 남동기들이 모두 원하는 부서를 갔을 때, 백오피스 업무를 하게 된 '나'가 있었고, 일 잘한다는 소문이 다른 층에까지 들려올 정도로 노력해야 원하는 부서를 가게 된 내가 있고, 같은 업무를 하는데도 앞자리수가 달라서 속상한 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담담히 '빛나'의 행복을 바라는 데에는, 청첩장의 경제학과 비슷한 이유가 내재되어있을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10만큼 했다면 10만큼 받을 수 있는 게 누구나 납득하는 청첩장의 경제학이지만, '나'의 커리어는 내가 10만큼 잘하더라도 그만큼 돌려받지 못하는 것에 있기 때문에, '빛나'가 잘 삼으로써 나도 잘 살 수 있게 되길 의망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요.
# 스크럼과 거북이와 레고
스크럼 회의로 시작하는 『일의 기쁨과 슬픔』 을 보면서 작년에 스타트업에서 일했던 게 생각이 나서 비죽 웃게되었습니다. 슬랙 채널에서 항상 in huddle 이었던 개발자분들은 항상 스크럼회의와 회고였거든요.
최근에 제가 듣고 있는 iOS 새싹 부트캠프에서 출시 프로젝트 과제를 시작했는데요. 바로 이 애자일 프로세스를 적용한 과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30일 주기 동안 실제 동작하는 제품을 만드는데, 기획을 하면서 스프린트 단위마다 어떤 걸 할 것인지를 정하고, 매일 매일 스크럼과 스프린트 회고를 함께하는 새로운 팀이 빌딩되기도 했고요.
스크럼 (애자일 개발 프로세스)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스크럼(Scrum)은 프로젝트 관리를 위한 상호, 점진적 개발방법론이며, 애자일 소프트웨어 개발 중의 하나이다. 스크럼(Scrum)은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를 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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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 트렐로도 잠깐 언급이 되었는데요. 칸반 방식으로 팀프로젝트를 관리할 수 있는 웹기반 관리도구입니다.
Manage Your Team’s Projects From Anywhere | Trello
Trello cards are your portal to more organized work—where every single part of your task can be managed, tracked, and shared with teammates. Open any card to uncover an ecosystem of checklists, due dates, attachments, conversations, and more.
trello.com
이 외에도 판교나, 당근마켓, 현대카드를 떠올릴법한 내용들이 있어서 재밌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여기서 포인트 월급의 경우 실제로 현대카드에서 있었던 일이라는 게 좀 기함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2015년에 있었던 일이었고 겪은 대상은 임원이긴 했지만, 월급대신 받은 수백만원어치의 포인트라는 게 참으로 씁쓸하더군요.
M포인트로 월급을…현대카드에 무슨일이 - 연합인포맥스
(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기자 = 현대카드 임직원들의 회사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현대카드는 워낙 인력 이동이 잦은 회사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 임직원들 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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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책 표지에 관련된 에피소드가 나오는데요. 엔씨소프트 사옥으로 가는 동안교쪽에 위치한 육교와 풍경입니다. 책 표지에 이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어요.
[한국의실리콘밸리, 판교]“밤새 불 밝힌 오징어배?” 여기는 혁신 판교
중앙일보는 한국 경제를 이끄는 새로운 힘, 판교 스타트업을 집중 조명하는「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시리즈를 올해 1월 시작했다. 50회에선 그간 작성된 「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 50회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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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저는 좀 웃겼던 내용 중에 하나가 이 부분이었는데요.
내성적인 개발자는 대화할 때 자기신발을 보고, 외향적인 개발자는 상대방의 신발을 본다더니,
저도 저 오래된 경구와 같은 구절을 꽤나 예전에 들어본 적이 있어서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 혼탕
저는 후쿠오카를 일생에 두 번 정도 방문을 해봤습니다. 그래도 꽤 가봤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 를 읽으니 료칸(일본식 여관)과 온천은 전혀 발도 들이지 않았더라고요.
아직 일본여행은 비즈니스 비자나, 패키지 여행 외에는 갈 수 없지만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전통여관과 온천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와 별개로 혼탕은 경험해보고 싶지 않은데요.
여기에서 혼탕에서는 두 남녀의 욕망의 혼재를 표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일한 욕망의 교차점이 이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었어요.
# 욱여넣다 그리고 울코스
드디어 내집 마련의 꿈을 이루었지만, 맞벌이를 하면서 집안일을 꾸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도움의 손길』 에서 '나'는 맘에 드는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를 찾았지만 불편합니다. 세탁방식에 대해 어깃장을 놓는 것부터, 조언을 빙자하여 자녀계획에 대한 불필요한 간섭까지.
가장 맘에 와닿았던 건, 자녀를 낳는 것을 그랜드 피아노를 집에 들이는 것처럼 표현한 것입니다. 『일의 기쁨과 슬픔』 에서 조성진 리사이틀을 예매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주인공을 보며 느꼈지만, 실제로 류진 작가도 피아노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하지 않았나 싶었어요.
소리의 아름다움에 매혹되며, 이를 알기 전의 세상은 전혀 다른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그랜드 피아노를 가정집에 욱여넣고 사는 것은 참으로 수고스럽고 고생스러운 일입니다. 스스로를 위한 공간보다는 그랜드피아노를 위한 공간이 더 많아질테고요.
조카들과 한바탕 하고 집에 들어올 적 그들의 사랑스러움에 매료되다가도 금세 지쳐버리게 되는데요. 그 때문에 '빨리 결혼해서 자녀를 가지라'는 주위의 말은 '우리, 이 아름답지만 누구도 대신해주지 못하는 수고를 함께 짊어지자'라는 소리로 들린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핀란드와 일회용카메라
『탐페레 공항』 에서 잠깐의 기억은 6년이 지난뒤에도 남아있습니다. 이력서의 문항은 채우지 못했지만, 미처 쓰지 못한 편지의 첫 구절을 시작하는 것이 가능했던 건, 내 꿈과 청춘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주 예전에 인터팔이라는 사이트를 통해 독일과 미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세명과 달팽이처럼 느린 편지snail mail 를 통한 펜팔을 사귀었습니다. 당시에 서예와 동양화를 배우고 있어서, 난을 쳐서 보내거나 좋아하는 한자를 직접 써서 보내곤 하고, EMS를 통해 제가 좋아하는 한국과자와 상대방 나라의 과자를 교환하기도 했어요.
저는 스무살 이후로 역마살이 든 것 마냥 매년마다 집을 옮기고 다녔기 때문에 아마 제가 이 연을 끊은 마지막 사람인 것 같지만요. 편지 안의 내용이 이제는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편지를 둘러싼 봉투, 소포상자 안의 내용물이 망가질까 꼼꼼히 둘러싼 모양새는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때문에 '내'가 그 공항에서 '얀'이 찍은 일회용 사진을 확인하다가, 혹시 사진이 구겨져서 갈까봐 포장에 들인 정성을 확인하는 장면에서는 괜히 함께 북받쳐 올랐습니다.
아름다운 오로라를 카메라에 담기보다도 '나'는 이미 적당한 돈과 사대보험에 자아를 의탁하게 되었지만, 적어도 오로라를 얘기하던 그 사람에게 내 젊음을 장식한 꿈을 전하던 기억은 오로라보다 아름답게 기억될 것입니다.
# 책을 덮으며
스포일러 아닌 스포일러를 전하자면, 이 책을 읽을 때 가장 좋은 점은 불행을 예감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미디어에게 노출된, 특정 전개에서 나타나는 클리셰적인 불행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책을 읽게 되면 저는 항상 조금 두려움에 떨었는데요. 이 책에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얘기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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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근황을 전하지 않았던 동안 같은 작가의 『달까지 가자』와 옥타비아 버틀러의 『쇼리』,를 완독하고, 캐롤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와,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시독하고 필독하진 못한 상태인데요.
이상하게 독서모임에서는 활발히 얘기를 나눈, 또는 나눌 수 있을법한 소설들은, 블로그에서 무언가를 남기려고 하면 저어되는 게 참으로 이상하네요.
올해 들어서는 항상 오랜만에 블로그를 올려서 '오랜만'이라는 말이 가끔 제 블로그를 정기적으로 봐주시는 분들에게는 관용어처럼 느껴지실 것 같아요. 혼자서만 노션에 정리했던 내용들은 정말 정말 많은데, '제대로 정제해야지'하고 생각만 하고 안 올리게 되는 저를 오늘 한 번 더 반성해봅니다.
다음에는, 꼭 공부하는 내용들과 근황을 올려볼게요.
오늘도 찾아와주시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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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책 추천도 감사하게 받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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